바튼은 그 모습을 나에게 들켰는데도 창피하거나 그런 표정이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제 3자인 나를 유혹하는 느낌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지만, 그때는 그저 홀린듯이 멍하게 쳐다보고만 있었다. 일부러 본 건 절대 아니었다. 지나가고 있는데 눈에 보이는 걸 어떡해. 끊임없이 위태롭게 흔들리면서 눈은 내게로 고정한 채로, 그는 이따금씩 눈을 찡그리며 쾌감에 신음하면서도 뇌쇄적인 눈빛을 보내왔다. 그가 절정에 다다라 눈을 꾹 감고 한 줄기 눈물을 떨어뜨렸고 그걸 남자의 어깨에 문지르고서야 나는 정신을 차리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 일이 있고 나서 하루 뒤, 모두가 모이는 회의실에서 바튼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쉴드복을 단정하게 입은 차림이었다. 어제 그런 일을 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정도로. 각자의 일들로 바빠서 나가버린 회의실 안에 바튼이 혼자 뒷정리를 자처하고 남았다. 그가 임무 때문에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날이면 항상 그랬다. 토니는 다른 이들과 함께 나가는 척 하면서 자연스럽게 문을 닫는다.
"...자네도 종종 그런 일을 즐기나 봐?"
"네, 저도 사람이니까요."
바튼은 책상 위에 이리저리 흩어진 종이들을 정리하면서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로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분명 바튼은 내가 나가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을 거다. 아니 어쩌면, 내가 나가지 않을 거라는 것도 미리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무슨 말을 할지도.
"의외인 걸, 그런 거랑은 거리가 멀어 보이는데."
"욕구를 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언제나 있으니까요."
그 대사에서, 바튼은 토니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는 슬쩍 입꼬리만 올려 웃고는 다시 종이를 모으는 것을 계속했다. 방금 나 쳐다본 거, 비웃은 거 맞지? 내 얘기한 거 맞지?
"...레골라스,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물어보세요."
"무례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자네 같은 사람을 안으려는 남자는 왜... 그렇게... 어..."
토니가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해서 버벅거릴 때, 바튼은 헛웃음을 뱉었다.
"무례하긴 하네요. 인내심이 없는 사람에겐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미안."
"정복욕이 든다나 봐요."
"뭐?"
"자기 밑에 깔고 정복해서 울리고 싶다나 뭐라나."
바튼은 어깨를 으쓱하며 다 모은 종이를 소각기에 넣어버린다. 소각기가 달달달 떨리는 소리를 내며 종이를 야금야금 집어삼켰다. 그런 변태 같은 취향이 있단 말야? 토니는 차마 입으로 내뱉지 못한 말을 속으로 되뇌였다. 아직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누구랑 하는지, 단순한 원나잇인지, 바이인지, 게이인지. 하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입은 다른 말을 내뱉는다.
"...그래서, 울었어?"
"...아니요. 쉽게 정복 당하면 나중에 안 찾잖아요."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토니는 한참을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말이 나오려다가도 입을 달싹이는 순간에 나오지 못하기를 반복했다. 바튼은 그런 토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전 임무가 있어서 먼저 나가 볼게요, 하고는 토니를 홀로 두고 나가버렸다.
여튼, 그 후로도 바튼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고, 가끔 모여서 회의도 하고, 혼자 자기 둥지에 처박혀 있거나 로마노프랑 있거나. 달라진 건 내 머릿속에 자꾸 맴도는 생각들이 자꾸 바튼이나 바튼과 연관된 것으로 향한다는 거였다. 새로운 수트를 만들어 볼까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거기에 화살 쏘는 호크아이를 모티브로 이어진다던가, 새로운 인공지능 기계를 만들어 볼까하는 생각을 하면 바튼의 성격으로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미친 생각이지 참.
그런 생각들이 미친듯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며 맴돌 때, 쉴드 안에서 우연히, 정말 우연히 바튼을 만나게 된 순간, 나는 내 행동을 제어할 수 없었다.
"...아, 스타크 씨. 안녕하세요."
"...레골라스, 나랑 잘래?"
바튼은 표정의 변화 없이 토니를 쳐다보았다. 물어봤던 토니가 무안해질 정도로 바튼은 대꾸가 없었고 표정 변화가 없었다. 결국 토니가 대답을 기다리며 눈썹을 들썩거리자 그제서야 바튼은 대답을 했다.
"아, 죄송해요. 약간 놀라서요."
"...그래서, 대답은?"
"싫어요."
"아니, 왜?"
"저는 원나잇밖에 안해요."
바튼이 빠르게 대꾸하고는 그대로 토니를 지나쳐 걸어가자, 토니가 바튼을 졸졸 따라가면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나랑도 원나잇하면 되잖아."
"토니는 저 말고도 할 사람 많잖아요. 여자도 많고, 토니 스타크니까 찾아보면 남자도 많을 거에요."
"남자랑은 안해봤어. 그래서 아무나랑 하고 싶지는 않아."
"전 친분 있는 사이랑은 안해요."
토니는 잠시 울컥해서 자네가 먼저 유혹했잖아! 소리치고 싶어졌다. 다른 남자랑 하고 있을 때에도 나한테 눈빛을 보낸 게 누군데. 창피하지도 않은 것처럼 뚫어져라 쳐다본 게 누군데. 나를 그렇게 홀리게 만든 게 누군데.
그리고 그제서야, 나는 바튼을 정복하고 싶다는 남자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저 높은 성을 뛰어넘든지, 무너뜨리든지, 아니면 파고들어가든지, 어떻게든 함락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마노프는 어떻게 단단한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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