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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바튼] Hunt you 2













"그건 왜 물어봐요? 클린트에게 관심이라도 생겼나보죠?"

아, 그런 거 아니야. 아닐 거야. 아닐 걸?

"그냥 궁금해서 그래. 내가 얘기만 하면 꼭 가시 세운 고슴도치처럼 굴잖아."
"그건 당신이라서 그럴지도 몰라요. 매일 괴롭히는 게 누군데."
"괴롭히는 게 아니라 그건 그냥 장난일...! 아니, 이런 얘기 할 때가 아니지. 그래서 어떻게 하냐니까?"
"연애 사업은 알아서 하세요. 바람둥이 타이틀이 정말 아깝네요."

나타샤는 애원하듯 말하는 토니를 보면서 웃었다. 그리고 이건 연애 사업도 아니고 자기는 바람둥이도 아니라고 하는 토니를, 친분 있는 사이랑은 안한다는 그때의 바튼처럼 지나쳐가면서 말했다.

"클린트에게 고마워해야겠네요. 당신의 이런 모습을 보게 되다니."
"그래서 어떻게 하냐고!"
"이것마저도 클린트를 향한 장난이라면, 난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테니까 여기서 그만둬요."

토니는 나타샤의 말에 어딘가 타격이라도 입은 듯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움직일 줄을 몰랐다. 실제로 나타샤가 토니의 멱살을 잡고 밀어 벽에 부딪히게 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타샤는 토니의 옷을 놓아 단정히 정리해주고는 가던 길을 걸어갔고, 더이상 토니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자 슬쩍 뒤돌아보았다.

"스타크 씨, 장난도 정도가 있는 거에요."

나타샤는 그대로 토니를 홀로 두고 가버렸다. 그제서야 토니는 제 행동이 바튼에게도 장난으로 느껴졌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내 이미지가 그렇게 장난밖에 모르는 사람처럼 보였나. 나도 진지할 땐 진지하다고.
난 진심이었다. 조금 창피하지만, 진심으로 바튼의 그 모습에 홀렸다고 말할 수 있었다. 진심으로 바튼과 자고 싶었다고 말할 수 있었고, 바튼을 정복하고 싶다는 것도 진심이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문제는 나는 나타샤의 말을 들은 후에서야, 내 모든 감정이 진심이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는 거다.

바튼은 내가 그 모습을 본 뒤로, 그 일에 대해서 얘기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난 항상 그런 사람이라고 알고 있을 테니까. 무엇이든 장난거리로 삼아서 얘기하고, 놀리고, 장난치는 그런 사람으로 알고 있을 테니까. 그러니 바튼이 장난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가능한-어쩌면 당연한-일이었다. 특히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하는 말이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진지한 말을 하는 와중에도 분위기를 풀어보려 농담을 하는 경우가 많았으니.

그러니 진심이라는 걸 전하자. 그래서 일부러 회의에서도 바튼의 옆에 앉았다. 아마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을거다. 바튼조차도. 어쩌면 로마노프 정도는 따가운 눈초리를 보냈을지도 모른다. 설마 아직도 클린트에게 장난을 칠 생각인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바튼은 내가 하는 말은 항상 하던 농담이라고 받아들였을 테니까 내가 옆에 앉든 말든 또 농담할 거라고 생각했을거다. 이번엔 농담도 아니고, 장난도 아니다. 회의가 막바지에 다다를 때쯤, 나는 다른 이의 귀에 안들리도록 바튼의 귓가에 속삭였다.

"클린트."
"...무슨 일 있어요? 레골라스라고 안 부르고."
"내가 진심으로 너랑 자고 싶다고 하면, 나랑 잘거야?"
"아니요."
"뭐? 왜?"
"그런 장난은 그만해요."
"아니, 진짜로, 진심으로!"
"예예, 그렇겠죠."
"와, 왜 안 믿어. 어떻게 하면 진심인 거 알아줄래?"
"글쎄요. 다시 태어나는 게 빠를 걸요? 좀 더 진실된 사람으로."

너무해. 진심인데. 약간 마음이 상해서 테이블 위에 엎드렸다. 풀죽은 나를 발견한 로마노프가 다가와 힘내라는 듯 어깨를 톡톡 두드린다. 괜찮아요, 스타크. 클린트도 언젠가는 알아주겠죠. 그녀가 하는 말이 농담이라는 걸 알고 있다. 내가 했던 말이 농담일 거라고 믿고 있을 테니까. 심기에 거슬릴 정도로 심한 장난이 아니라면 그녀도 충분히 서슴없이 질이 낮거나 성적인 농담도 받아칠 수 있는 여자니까. 그걸 알아서 그런지, 이젠 그녀의 말이나 농담에 크게 동요되거나 그러지 않는다. 죽인다는 협박이 아니라면.
그녀가 나가자, 로마노프의 말로 대충 상황을 파악한 배너와 캡틴이 놀랍다는 듯이 웃으며 얘기했다. 토니가 바튼을 좋아하나봐요. 오, 오래 살고 볼 일이군. 아이언맨의 짝사랑이라니. 하하하하!
이걸로 한동안 놀려대겠군. 즐겁게 웃으며 지나쳐가는 둘은 신경도 안 쓰고 바튼은 오늘도 뒷정리를 자처했다. 그는 여전히 풀죽어있는 나를 힐끔 보고는 피식 웃었다.

"왜 웃어?"
"재밌어서요."
"뭐가 재밌어?"
"스타크 씨가 이런 장난에 쩔쩔 매는 거요."
"...너나 로마노프나 똑같네."
"그거 냇이 들으면 화낼걸요. 내가 그런 멍청한 놈이랑 똑같다는 거예요? 이러면서."
"클린트."

바튼이 나타샤의 억양과 말투를 따라하며 웃었을 때, 뒤에서 진짜 나타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튼은 소름이 돋는 걸 느끼면서 어색하게 뒤돌아 웃으며 나타샤를 쳐다보았다.

"어... 언제 왔어?"
"하하... 귀여운 내 매 새끼."
"냇...? 냇! 미안해!"
"스타크 씨, 멍청한 놈 좀 데려갈게요."

나타샤가 살기를 띄우고 웃으며 토니에게로 고개를 돌리자, 토니는 고개를 여러번 끄덕였다. 역시 여자는 건드리는 게 아니야. 페퍼든, 로마노프든, 더럽게 무섭잖아. 나타샤에게 끌려나가는 바튼의 표정이 꽤나 울상이다. 둘은 참 친해보이네. 좋겠다. 토니는 멍하니 앉아 둘의 사이를 부러워했다. 자기가 느끼는 부러움이라는 이 감정이 낯설음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토니는 애써 부인하지 않았다. 제 진심이라는 걸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토니는, 그 순간부터 바튼에게 관심을 숨기지 않기로 결심했다.